설날 겸 할머니 집에 잠깐 들러 서재를 구경하다 이 책을 발견하였다. 모의고사에 법정 스님 수필이 몇번 출연해서 호기심에 펼쳤는데, 예상외로 흡수력 있고 인생에서 이 시점, 느끼고 있던 결핍을 채워줬다. 영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군데군데 언급되는 영문학 서적이 반가웠으며, 나 역시 생택쥐페리의 "The Little Prince"를 인생의 지침서로 삼다시피 하였기에 법정스님의 생각에 크게 공감이 갔다.
특히 종교에 대한 법정 스님의 통찰에 가장 공감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아는 분과 영어로 "종교에서 추구하는 본질은 같은데 왜 교단끼리 서로 배척할까"를 두고 대화한 적 있는 터라 이 수필이 더욱 개운하게 느껴졌다.
또, 생택쥐페리에게 고하는 편지에서 언급된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에선 어쩐지 오늘 읽었던 "tuesdays with morrie"가 떠올랐다. "If we know, in the end, that we can ultimately have that peace with dying, then we can do the really hard thing...Make peace with living... We think because we're human we're something above nature. We're not. Everything that gets born, dies."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따라서 죽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 여기서 법정 스님은 어린왕자가 육체를 보는 관점과 관련지어 흥미로운 관점으로 육체와 무소유를 연관짓는다. 바로 육체 또한 "무소유"에서 언급되었던 난초나 "탁상시계"처럼 우리가 잠깐 빌려 쓰는 것이므로, 육체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병든 몸을 탓하며 생각이 편협해진다. "무소유"를 읽기 전에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 불만족스러우니 자꾸만 도피하려 하고, 현재의 상황을 "경직되었다"라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생각을 고쳐 먹으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다시 말해 죽어가는 것과 같다'는 법정 스님의 말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2022년 들어 부쩍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며, 나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뤄야 할 목적 (비유하자면 백석이 "백신의주 남동 박시봉방"에서, 무료한 일상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고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는 '자신을 끌어가는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과 비슷한 목적, 또는 플로티노스의 테오리아와 '일자로의 회귀'애서 "일자")가 희미해져 가던 것을 느끼던 차였다. 마치 이육사의 "생명의 서"에서 뜨거운 아라비아 사막에서 그가 자아의 본질과 대면하고자 하는 것처럼 , 또는 작품 "또 다른 고향"에서 윤동주가 어둠 속 그의 백골과 대면할 때처럼, 법정 스님의 글을 읽는 그 순간에 나 자신의 본질과 대면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걷어내고 바라보았을 때, 결국 인간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자연"이라는 존재가 새삼 거룩하게 다가왔다. 자연을 바라볼 때 자연스레 눈물이 고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떨림과 기쁨,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은 자연의 일부로서 죽게 되어 있는데, 인생에 회의감을 느껴 미리 그 죽음을 앞당겨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설령 내가 인생의 고상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처럼 인생은 무엇인가, 에 대해 로봇이 기계적으로 답을 내놓는다면, 그 답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오히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허무해지는 게 인생이 아닌가?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그렇다면 오히려 나는 인생의 고상한 목적에 대해 성급히 답을 찾으려 할 것이 아니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을 충만하게 온몸으로 느끼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게, 그래서 1분 1초에 최선을 다하는 게 최우선이지 않을까? 릴케도 "letters to a young poet"에서 이렇게 조언하지 않았는가. "I would like to beg you, dear Sir, as well as I can, to have patience with everything that is unsolved in your heart and to try and cherish the questions themselves, like closed rooms and books written in a strange tongue. Do not search now for the answers which cannot be given you because you could not live them. It is a matter of living everything. Live the answers now. Perhaps you will then gradually, without noticing it, one distant day live right into the answer."
"무소유"는 세계 문학사의 고귀한 영혼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칼릴 지브란, 생택 쥐페리, 엘리 위젤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학적 영혼의 성숙한 영혼의 눈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용운을 생각나게 하기도, 그 깨끗함과 성찰적 어조에서는 윤동주가 생각나는, 그러나 법정 스님만의 깨끗하고 단단한 문체가 보이는 작품이다. 책의 서문에서도 언급되었듯, "무소유"는 현재 우리나라 수필처럼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그런 글이 아니라, 한 획 한 획 집중해서 온 마음으로 쓴 글이라 그 진심이 활자를 뚫고 날아와 박힌다. 작년 상반기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필요한 순간에 시기적절하게, 그러나 우연하게 나에게 온 책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필사하고 마음에 새길 책 같다.
인상깊었던 구절-간추릴 수 없는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까지 정말 알지 못했다. 가까이 서기조차 조심스러운, 애처롭도록 연약한 꽃잎이며 안개가 서린 듯 몽롱한 잎새 그리도 환상적인 그 줄기하며가 나를 온통 사로잡아버렸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pg96, 순수한 "
"그런데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나는 법이거든. 꽃에서 향기가 저절로 번져 나오듯. 어떤 시인의 말인데, 꽃과 새와 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기쁨을 우리에게 베풀어준다는 거야. 그러나 그 꽃은 누굴 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속의 새둘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벌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기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 속에 피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안에서 번져 나오는 거다. 맑고 투명한 얼 안에서 밖으로 번져 나와야 한단 말이다. ... 나는 네가 시험 점수나 가지고 발발 떠는 그런 소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네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소녀라는 말은 순결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슬기로운 본질을 가꾸는 인생의 앳된 시절을 뚯한다. -pg119, 아름다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필들 -그 여름에 읽은 책: 책 자체에 집착하던 나에게 따끔하게 혼쭐을 내준 작품. 어떤 스님의 말, "책을 모두 버려라"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지평선을 넓히는 '수단'이다. '수단'과 '목적'이 전이되면 그야말로 주객전도가 아니겠는가. -잊을 수 없는 사람: 점차 극단적 개인주의로 치닫는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인간성을 짚어냄. -아름다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들.
아..우리나라 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한 사람의 생각이 이토록 고결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담담하면서도 알알이 이야기되는 다양한 생각의 표현들이 나의 맘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법정스님이 지금을 살고 계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셨을까?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소유에 대한 아름답고도 깊은 성찰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어린 왕자에게 말을 거실 때에는 더없이 순수한 법정스님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고, 문명의 발전을 바라보시는 모습에서는 숲을 잃어가는 자연인으로서의 관점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종교간의 화합을 이야기해주실 때에는 그 넓은 자비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얇고도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그 어떤 책들보다도 아름다움과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책이었다. 깊은 산속의 산사에서 차를 마시며 노스님과 함께 침묵을 즐길 때 서로 오가는 대화를 느끼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말씀하시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한글의 아름다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마음 속으로 법정스님이 계신 산속어딘가의 사찰에 꼭 한번 가서 시간과 자연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끼고 볼 책이다.
Why has Buddhism gotten so popular in the modern age? One hypothesis is because it’s rooted in humanism. The author, a Buddhist monk, reminds us that the greatest religion isn't "Buddhism, Christianity or Judaism", it's kindness.
Monks are also excessively forgiving towards thievery. Thieves remind us that we should never get too attached to our material belongings. Our possessions shackle us down, and we only miss them when they are taken away. Maybe we're better off with less after all.
In the book the author states that there are books that are hard to keep on reading. 무소유 is one of those books. Each page has so much knowledge and life-lessons that are vast and potent. It's impossible for one not to ruminate after reading a sentence. The book should be read more than once. The depth of information from the book ripes much more as the reader grows older reading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