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읽는 내내 작가의 삶을 상상했다. 작가는 불공평함을 많이 겪어왔을까, 작가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을까, 좋지 않을까? 작가는 불행했을까? 작가는 많이 무기력한 걸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사슴벌레식 문답)” 결국 이런 식으로 작가는 자신의 고통을, 과거를, 절망을 이겨내려고 한 걸까?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이러면서 또 자기를 채찍질했을까? “까맣게 잊고 싶은데 그들은 이상하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기억의 왈츠)” 이런 식으로 또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던 걸까? 작가의 우울과 불공평함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과거에 대한 연민이 소설과 소설 사이에 잘 느껴졌다.
이렇게 슬픈 상상을 하다가 문득 ’작가는 술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너무 엉뚱한 상상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권여선 작가를 검색해 보니 애주가라는 얘기가 나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튼, 무거운 글들 사이에서 좋은 문장들을 읽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