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 그가 《연필로 쓰기》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을 다시 한번 사로잡을 산문으로 돌아왔다.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돌아온 경험담,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의 유머로 승화해 낸 도구에 얽힌 기억, 난세를 살면서도 푸르게 빛났던 역사의 청춘들,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온갖 냄새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치밀했던 그의 ‘허송세월’을 담은 40여 편의 글이 실렸다.
소설가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문학기행1, 2'(공저)'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음달 북클럽 선택 책, 김훈의 "허송세월"을 친구가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한국에 있는 동안 책을 끝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몇 시간의 여유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발췌할 수 있었다. 김훈 선생의 글에는 힘이 있고, 그의 다채로운 언어들은 나를 감동시킨다.
자연을 사랑하고, 걷기를 좋아하고, 이제 인생의 뒤부분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봄을 맞이하여 그의 시각을 통한 봄에 대한 감성은 동감이다. "봄은 멀리서 다가와서 가까운 곳에서 완성된다. 신록의 생명은 확실하고 자명해서 생명감과 직통함을 나무 한 그루에서 새잎이 돋으면 천하의 몸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봄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고프다. 한동안 다독하다 눈이 많이 나빠져 버렸다. 이젠 오디오 북으로 바뀌니, 귀가 나빠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김훈 선생은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지면, 공원에 나갔다. 나도 컴퓨터를 그리고 책을 너무 오래 볼때는,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회사 빌딩을 돌곤한다.지금이 바로 그 시간인 듯 하다. 나가서 머리도 식히고 눈도 쉬게 해 주자.
그는 걷기를 예찬한다. 걷기는 시원적이고 인류학적이다. 걸어가는 사람 앞에는 언제나 새롭고 낯선 시간과 공간이 펼쳐진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오직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그 순간의 주인이다. 나가자! 삶을 향해서 시대와 사물을 향해서 멀리 뱅뱅 돌아가니 말고 바로 달려들자꾸나나. 외로움, 소외, 억압 같은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 나려면, 일단 걷자. 그리고 나의 내면을 탐구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원래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힌다." 희망에 가득찬 문장이다. 자존감이 풍성히 넘치는 감성이다.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할때 우리 앞에는 시야로 감당할 수 없는 산천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봄을 즐기자..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부고는 그다지 두렵지 않다.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로 돌아가고, 내가 쓴 글 몇 줄이 세월에 풍화되어 먼지로 흩어지고, 살았을 때 나를 들뜨게 했던 어수선한 것들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적막해지는 사태가 좋거나 나쁜 일이 아니고 다만 고요하기를 나는 바란다. 이승에서의 신산한 삶을 위로할 만한 지복이나 구원이나 주막이 거기에 없어도 나는 괜찮다. (7p)
(…) 의사가 또 말하기를, 늙은이의 병증은 자연적 노화현상과 구분되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의 병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딱히 병이라고 할 것도 없고 병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었는데, 듣기에 편안했다. 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다. (…)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37p)
나와 세상 사이에 본래 칸막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 손으로 칸막이를 세워 놓고 말의 감옥 안에 스스로 갇혀서 그 안에서 말을 섬기면서 살아왔으니 불쌍하다, 나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저녁들은 뿌옇다. (39p)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43p)
햇볕을 쪼이면서 생각해 보니 내 앞의 담장은 개념, 기호, 상징, 이미지, 자의식 같은 것들이다. 나는 이 언어적 장치와 그 파생물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면서도 이 차단막에 의지해서 세상을 이해하려 했는데, 이 가려짐은 삶의 전범위를 포위하고 있어서 부자유가 오히려 아늑하고 친숙했다. (44p)
화장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이 가벼움으로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 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가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내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51p)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이런 시문을 남겼다.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52p)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 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 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54p)
나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남의 죽음을 문상 다니고 있다. 말더듬증만이라도 온전히 간직하면서 병원 다니고 문상 다니며 여생의 날들을 감당하려 한다. (62p)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92p)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보다 사물과 사람과 주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 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 (128p)
걸어가는 몸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연료처럼 사용되고, 다리로 땅을 밀어서 살아 있는 몸은 앞으로 나아간다. 정신성은 몸과 함께 간다. (133p)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집과 길은 중요함이 같다. 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도로고> 중에서
A collection of very short essays- year 1948 born author talks about various subjects from aging, his hopes/regrets of his writing career, current social issues and people in Korean history. His wits and words are still very sharp when he's criticizing various unresolved social issues. I found his more relaxed essays talking about getting old more potent than his sharp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