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 충돌이 격화되어 세계는 다시 ‘문명 충돌’의 징후에 잠식되었다. 뉴스와 담론은 다시금 이슬람을 ‘외부자’, ‘위협’, ‘서구 문명과 대립하는 타자’로 호출한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이슬람 문명이 유럽 역사에 함께 뿌리내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사실을 가려버린다. 『기억의 장소 : 유럽 속 이슬람 문화』는 바로 이 낡은 프레임에 도전하는 책이다. 지워진 흔적을 복원하고, 공존의 지형을 다시 그리는 시도로서 이 저작에 참여한 21인의 연구자들은 유럽의 도시와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이슬람의 기억’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유럽 정체성과 문화 형성에 깊숙이 스며든 이슬람 유산의 자취를 되짚어본다.
특히 이 책은 문화적 경계의 역사, 유럽 문명의 ‘순수 신화’를 해체하는 공간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리 아랍 세계 연구소, 플라멩코의 뿌리, 독일어와 스페인어 속 아랍어 차용어, 아베로에스와 이븐루시드의 철학까지… 도시의 건축과 언어, 문화와 예술, 몸짓과 음식 속에 각인된 이슬람 유산의 흔적을 추적하며, ‘유럽’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다문화적 접촉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지중해의 건너편에서 온 문명이 어떻게 유럽의 일부가 되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학술적, 문화정치적 탐색이자 이주와 혼종, 갈등과 공존의 서사를 담은 인문지리적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