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분자생물학의 화두를 가볍고 경쾌한 문장으로 풀었다. 생명과학의 역사를 살피며 과학사의 그늘에서 연구에 매진한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한편, 생물을 무생물과 구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명관의 변천과 함께 고찰해나간다.
분자생물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20세기를 훑어가다 간혹 실험에 몰두하는 에이버리, 프랭클린에게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의 숨은 노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노구치 히데요나 왓슨, 크릭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며 은폐와 조작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과학계의 그늘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한 소년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100여 년 생명과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새로운 생명관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생명에 대한 새롭고도 감동적인 해석은 최근의 광우병 논란과 황우석 사건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바이러스에 관한 책을 검색하다가, 초보자에게는 이 책이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사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고 보니 4년 전에 이미 샀던 책이라고 뜬다. 책장을 뒤져 뒤져 겨우 이 책을 찾아내고는 단숨에 다 읽었다. 생물학에 관한 책을 종종 읽는 편인데, "아, 바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나의 최초의 생물학책은 바로 이 책이었어야 했는데"라는 경외와 후회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은 쉽고 간결하고 우아하면서도 정보로 가득차 있는 것이, 마치 단 4개의 염기만으로 지구의 온갖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다 표현하는 간결하고도 우아한 이중나선 구조의 DNA와도 같다.
가만, 그런데 이런 느낌, 처음이 아닌 것 같다? 이 기시감은 뭔가 싶어 저자의 다른 책들을 검색해보니, 먼 옛날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의 <모자란 남자들>을 읽고 "아, 이 책을 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라며 그 때도 탄식했던 기억이, 치매가 날로 심해지는 와중에도, 살살 돌아온다. 주문 조회를 해보니 <모자란 남자들>을 먼저 사서 읽은 후 감명받아 후쿠오카 신이치의 책들을 모조리 다 사놓고는 (그렇다. 이 책을 찾는 와중에 책장에서 후쿠오카 신이치의 책이 총 5권 발굴되었다. 그래도 대부분 절판되었으니 후회는 없다. 절판되기 전에 사놓길 잘했지 뭐야.) 4년 동안 펼쳐보지도 않고 책을 사놓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내가 했을 법한 짓인데,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 기회에 <모자란 남자들>도 다시 읽고 사놓고 아직 안 읽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나머지 책 3권도 연결해서 읽고 싶은데, 잘 될 것 같지 않다. 최근에 사놓은 책들이 또 다들 만만치않은 명저들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분들이시기 때문이다. 나날이 치매가 심해지는 와중에 그나마 남은 인생 중에서는 가장 뇌가 젊은 날인 오늘, 저 수많은 명저들 중 무슨 책을 먼저 읽어야 할까? 이 고민은 독자가 평생 품고 살아가야 할 천형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나는 또 한 달도 안되서 이 책의 내용을 다 잊어버릴 것이다. 4년 후에는 내가 이 책을 사서 읽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차피 잊어버릴 이 책을 괜히 읽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책이란 원래 새로 읽는 만큼 옛 것은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 속에 둘 곳이 없다. 책을 새로 사는 만큼, 또 가진 책은 처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둘 곳이 없다. 읽고 잊고 사고 팔기, 이것이 바로 독서의 동적평형이고 신진대사다.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독서를 하며, 또 망각하며.
아빠는 회사에서 책을 가져오시곤 한다. 대부분 경영 책, 사회과학 책이라 잘 읽지 않는데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과학책이라 한 번 펼쳐보았다.
고백하자면 과학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물다. 같은 말을 예시만 달리해서 반복하는 경우가 많고, 장을 건너뛰어 읽어도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그냥 집에 있길래 읽은 책인데 생각보다 무척 재밌었다. 아파트 앞 휴게 공간에서 운동기구를 타면서 열심히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는 일본의 저명한 분자생물학자이자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책 집필을 통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책은 그가 한때 소속되어 있었던 뉴욕 요크애비뉴 66번가, 록펠러대학에서 시작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저층 건물이 모여있는 록펠러대학은 노구치 히데요가 허둥대며 뛰어다닌 곳이기도 하고, 오즈월드 에이버리가 조용히 걸어다닌 곳이기도 하며 로돌프 쇤하이머가 종종 찾은 공간이기도 하다.
후쿠오카는 DNA가 유전물질임을 증명한 오즈월드 에이버리를 소개한다. 에이버리는 폐렴의 병원체인 폐렴쌍구균을 연구하다가 죽은 S형 균(강한 병원성을 가짐)과 살아있는 R형 균(병원성이 없다)을 섞어 실험동물에게 주사하니 폐렴이 발병하여 동물 체내에서 살아있는 S형 균이 발견됨을 알아냈다. 에이버리는 균의 성질을 바꾸는 화학물질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밝히려 했다. 그리고 균의 성질을 바꾸는 물질은 다림아닌 유젼자이다. 에이버리는 S형 균에서 여러 가지 물질을 추출하여 어느 것이 R형 균을 S형 균으로 변화시키는지 면밀이 검토했고, 그 결과 남은 후보는 S형 균체에 포함되어 있던 산상 물질, 즉 DNA였다.
그리고 DNA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한다. 겨우 네 가지 종류의 문자 (염기 A C G T)를 가진 DNA가 어떻게 수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인지, DNA 시료의 순도는 얼마만큼, 어떻게 상승시켜야 하는지 등을 과거 과학자의 시선에서 설명한다. 나는 학교에서 배우고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인 과학지식인데, 'DNA는 유전물질이다' 라는 한 문장은 과학자들의 수많은 고뇌가 함축된 문장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대칭 구조가 바로 자기 복제 기구를 시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다.
왓슨과 크릭이 샤가프의 법칙(동물, 식물, 미생물, 어떤 기원의 DNA라 하더라도 혹은 어떤 DNA의 일부라 하더라도 그 구성을 분석해 보면 네 개의 문자 가운데 A와 T, C와 G의 함유량은 같다.)을 규명한 기념비적인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덧붙인 문장이다. 1학기 때 읽었던 <이중나선>이야기다. <이중나선>은 왓슨의 시각에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여정을 그린 책이다. 그렇다면 제3자가 본 DNA 이중나선구조 규명은 어떨까.
<이중나선>에서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윌킨스의 조수로 등장하는데, 까다로우며 히스테릭한 레이디 '로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언젠가 왓슨이 킹스칼리지를 방문했을때 로지와 논쟁을 하게 되어 상당히 기분 나빴던 적이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윌킨스와 피해자 동맹을 맺으며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윌킨스는 어떤 비밀을 말해준다. 그가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의 3차원 형태가 나타난 X선 사진의 결과를 몰래 복사해서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DNA결정을 촬영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을 그가 도용했다는 것이다. <이중나선>을 읽을 때는 프랭클린을 이상하게 봤고 왓슨이 그녀의 X선 사진을 보았다는 대목도 큰 감흥없이 넘어갔었다. 그런데 도용이라니. <이중나선> 뒤의 이야기를 알고나니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여정이 한결 다르게 보였다.
책의 포롤로그에서 작가는 묻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답한다. 그것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 제1장부터 제8장까지는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자기를 복제하는 생명의 본질, DNA에 대해 계속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제9장부터 제15장까지는 '자기 복제 시스템'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생명의 다른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동적평형'이다. 지금 화학시간에 배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 시스템이란 여러 과학책에서 읽어왔기 때문에 색다를건 없었지만 동적 평형에 대한 후쿠오카의 견해는 확실히 신선했다.
모래성이 있다. 파도와 바람이 모래성의 모래들을 조금씩 가져가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도 성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작은 바다의 정령들이 끊임없이 휩쓸려나간 모래 위에 새로운 모래를 쌓아주고 구멍을 메워주며 무너진 곳을 고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모래성 안에는 며칠 전에 이 성의 형태를 만들었던 모래들은 단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즉 모래성은 완전히 바뀐 상태다. 후쿠오카는 이 모래성이 생명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비유라고 말한다.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인 것이다.
그리고 후쿠오카는 쇤하이머의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쇤하이머는 실험 쥐에 아주 짧은 일정 기간 동안 중질소로 표시된 로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한 사료를 먹였다. 그 다음 쥐를 죽이고 모든 장기와 조직을 대상으로 중질소의 행방을 찾았다. 당초 쇤하이머와 생물학계는 아미노산이 연소되고 남은 찌꺼기에 함유된 중질소는 모두 소변으로 배출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험 결과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대부분의 아무노산은 쥐 체내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즉 쥐를 구성하고 있떤 몸의 단백질은 겨우 사흘 만에 식사를 통해 섭취한 아미노산의 약 50퍼센트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학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 자신에 대해, 생명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그랬다. 생물은 하나의 흐름이다, 현상이다 하는 말들이 비유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하나의 현상이라니. 새로운 걸 알면 알아갈수록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래도 질문이 있어야 답도 있는 법. 이런 혼란스러움이 언젠가 내게 답이 되어 돌아올 것을 믿는다.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생명과학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
This was a really interesting book. It made me dust off Schrodinger's "What is Life" and read it again. The way he describes what goes on in the a cell is really inspiring. Also, I like his bringing up the "unsung heroes" of microbiology like the tragic Rudolf Schoenheimer. He also gives credit where it is due to Oswald Avery who never received the recognition he deserved.
Title: Between living and nonliving matters This is a book written by a molecular biologist to explores what the "life" is. This book is very easy to read. I think the author did a great job to intrigue general readers who are not very much interested in molecular biology.
This is an amazing book. It explores the true meaning of science and the quest to find the meaning of life - or rather the difference between life forms and lifeless matters. I would have regret had I not read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