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p to ratings and reviews
Rate this book

당신들의 대한민국 2

Rate this book
알라딘 : 사회구조에 관한 담론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노자 : 저는 인간에게 그 어떤 정해진 “본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일개의 동물이지만 여타 동물들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좀 다릅니다. 예컨대 보통 동물들은 동종을 죽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인”이란 거의 그 역사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달리 그 존재의 유한성을 절감할 수도, 자기 자신을 상대화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의 능력도 자기 지양의 능력도 여타 동물에 비해 월등합니다. 결국 선 내지 악으로 인간을 유도하는 것은 복합적 의미의 “상황”이라고 봅니다.

알라딘 : 성악설, 성선설, 성무선악설 같은 고전적인 인간관 외에도, 뇌과학과 인지신경과학 등의 발달로 과격하게는 자유의지란 없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문, 사회과학과 함께 자연과학 분야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해당 분야에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인간의 이성은 믿음직한 도구가 아니’라는 관점이 팽배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주장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은 물론 절대진리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정말로 이런 주장들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박노자 : 인간의 이성의 한계란 몇 가지 엄연히 있습니다. 첫째, 감정, 특히 집단적 공포 내지 혐오 등이 개입되면 인간은 맹수 이상의 맹수가 됩니다. 둘째, 정보 보유량의 제한과 고정관념에 의해서 이성을 십분 활용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보통 시장경제 이외의 그 어떤 경제 시스템도 잘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의 모든 “이성적” 판단을 그 틀 안에서 하지만, 사실 이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입니다. 시장 경제에 대한 대안 관련의 정보 및 인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알라딘 : 책이 출간되고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찔할 정도로 커다란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 (쌍용차, 미디어법 등) 그럼에도 분노한 ‘개인’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블로그에서 언급하신 그대로 ‘파편화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수전 손택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모든 매체들이 ‘클릭수’만을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들을 뽑아내는 사회에서 어쩌면 고통은 그저 소비되고 마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듦’의 정신이 사라진 대학생들의 예처럼,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세상을 사고할 새도 없이 경쟁의 장에 던져진 채 자본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미디어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경향에 불을 지피겠지요.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삶은 어떨까요? 자본을 매개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고, 자본 이외에는 욕망할 수 없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박노자 : 모택동의 유명한 말 대로 “억압이 있는 곳에는 늘 저항이 있다”는 건 역사의 철칙입니다. 단, 억압의 강도와 종류에 따라서 저항의 방법도 천차만별이 됩니다. 예컨대 시위 등이 불가능한 북한에서는 유망, 국외 탈주, 불법 복제된 한국 내지 중국 비디오 시청 등은 주된 저항 방법으로 이해됩니다. 남한의 경우에도 자본의 질서에서 배제되거나 하위배치된 인간들은 분명히 가만히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예컨대 지방대 학생들은 새로운 저항의 선봉에 설 듯합니다. 이 시스템에서 그들로서 비정규직조차 되기 힘들고,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노비 문서” (지방대 학력)에 의해서 어차피 평생이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컨대 실업자 박사나 시강 강사 등 자본주의적 앎의 질서에서 소외를 당한 이들은 앞으로 수유연구실과 같은 대안적 앎의 공간을 더 만들 가능성도 큽니다. 발버둥쳐서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는 건 인간 생명의 기본 원칙인데 말씀입니다.

알라딘 : 죽음은 이제 가장 좋은 상품이 되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요. 문제는, 애도조차 소비의 형태로 소비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엔 도대체 소비되지 않는 게 무엇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이라는 ‘상품’을 다루는 merchandiser로서 인문사회 분야의 침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상품’ 중에, 같은 돈을 주고 고민을 사들이려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은 돈이면 즉각적인 감동과 재미, 위로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아가, 인문사회과학서적의 어떤 독자층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인문사회서적을 구입하는 행위로서 소비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그런 책을 읽는 고행(?)을 통해, ‘나는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위안을 얻고 동시에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데 아무래도 불편할 생각들을 해소하는 것이지요.

조금 바꿔 말하자면,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구현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예술 영화를 보고 고급스러운 전시회를 찾아다니듯, 흔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구입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적이 더 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요?

박노자 : 분명히 그런 부분은 있습니다. 노르웨이 사회만 해도 청소년 사이에서 촘스키를 읽고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지지 데모에 다니는 것을 괴장히 “쿨한” 행위로 통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문제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파악 등도 없이 “집단 정체성에 자기를 맞추어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지요. 미국에서 흔히 쓰는 표현대로, “반대의 상품화” (commercialization of protest)입니다.

여기에서는 예컨대 진보정당 등은 “진정한 반대의 조직자”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진보적인 인문교양서를 읽어 감동 받은 독자가 단순히 “나는 진보다”라는 의식을 단순히 자기 위안 내지 자기 차별화 전략으로만 삼지 않으려면 그 후에 진보정당이라든가 진보 단체 등에 가입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 “활동”/”실천”이야말로 진보의 진정성의 시금석일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 프랑스 등과 달리 – 아직도 진보 정치 등을 쉽게 일상 속에서 접근하기가 힘들어서 문제입니다.

알라딘 : 스스로에게 위 질문을 던졌을 때 단숨에 ‘아니’라는 대답을 할 없었습니다. 아마도, 분야 및 직업의 특성상 너무 오래 그런 책들을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사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는 그저 변명일 뿐인 변명을 하면서.

그렇다면, 이 사회에 의문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하지만 생활을 위해 지금 갖고 있는 직업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되는 생활인으로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박노자 :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심”이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지요. 진보적 NGO를 위해 약간의 금전적 기여를 한다든가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는 언론이나 그 언론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항의 전화 하나 건다든가… 작은 일 같지만 수천 명, 수만 명이 같이 하는 작은 일은 바로 큰 일이 됩니다. 그 “공동의 관심”의 영역이란 사라지면, 우리가 사회가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는 것은 바쁜 삶 속에서도 가능하지요.

알라딘 : 저작권법이 강화 되었습니다. 아직 정확한 실체 없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소문들은(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들 하는 말이 달라서) 개인의 블로그에 영화 스틸이나 노래 가사를 올리는 것도 위법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에, 한 게시판에서 불법음원에 대한 포스팅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이제 노래도 듣지 말라는 거냐”고 툴툴 거리자, 다른 분이 “노래는 안 들어도 안 죽는 거 아니냐. 돈 없으면 듣지 마라”고 댓글을 달았지요. 얼핏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가만히 생각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문화는 하나의 공공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니까, 누구나 밥을 굶지 않는 사회가 옳은 사회 듯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옳은 사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작권자의 권리 또한 보호해주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책의 저자라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노자 : 제 생각 같으면 공공 재정으로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물 등은 당연히 공공재임으로 저작권을 주장할 일은 없습니다. 예컨대 노르웨이 납세자 돈으로 운영되는 제 대학에서 제가 혈세로 이루어지는 노르웨이 학진의 연구비를 받아 논문을 썼으면 그 논문을 당연히 그냥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제 학교 사이트에 게재합니다. 학술저널에도 게재하지만, 그 저작권과 무관하게 공공재로 활용하자, 이것입니다. 그런데 공공 재정이 아닌 “시장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소설작가나 음악가 등은, 아무래도 저작권법을 뛰어넘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만약 어느 정도 살 만한 수입이 일단 확보되면 이 분들도 자신의 저작물을 공공재로 활용할 것을 권고할 수 있지만, 요구하기가 좀 힘듭니다. 시장 경제로서의 제약이지요.

알라딘 :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한다는 것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자본에 의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직장인으로서 상충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상품을 공급하는 A, B, C 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A와 B는 원가 절감을 단행하여 가격을 인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방식은 하청업체나 비정규직에게 부담을 돌리는 방식이죠. 그래도 신조가 있던 C 회사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으나, 점점 더 채산성이 악화됩니다.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내리거나,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회사는 문을 닫을 것입니다. 물론 혁신적인 방법은 찾을 수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C 회사는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이때, C 회사에 다니는 직원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박노자 : 이러한 상황이라면 “일체 직원의 동등한 자진적 임금 삭감 및 같은 비율로서의 기업주의 이윤 포기” 정도면 가장 ...

319 pages, Paperback

First published January 18, 2006

About the author

박노자

15 books2 followers

Ratings & Reviews

What do you think?
Rate this book

Friends & Following

Create a free account to discover what your friends think of this book!

Community Reviews

5 stars
2 (66%)
4 stars
0 (0%)
3 stars
0 (0%)
2 stars
1 (33%)
1 star
0 (0%)
No one has reviewed this book yet.

Can't find what you're looking for?

Get help and learn more about the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