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바람은 그리 커다란 욕망이 아닐 것이나,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 풍토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것이기에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현직 부장판사인 저자가 문제적이라 진단한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때론 신랄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이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 탐색해본다.
처음 봤을 때 이 책에 대해 편견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자라니. 하지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른 것이었고,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반성도 하고, 회의와 의문도 품다가, 위안도 받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돌아불 수 있게 해준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끌리는 제목에 가벼운 마음에 덥석 집어 칸쿤까지 들고 갔다. 그리고 칸쿤 가서 예쁜 해변 보고 친구들과 신나게 웃고 있어야 하는 나를 한순간 울컥하게 만든 책이다.
법조계에 한 발 걸쳐봤던 나로서는 성급한 일반화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법조계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이런 글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극도로 몸 사리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눈초리 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속 시원하게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집단주의를 다양한 예시와 함께 재치있는 문체로 풀어내 줘서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정말 제대로 개인주의를 해본 적은 있는가? 라는 물음이 반가웠다. 사실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 살기 괜찮은 나라다. 깨끗한 대중 교통, 안전한 치안, 편리한 각종 서비스, 빠른 인터넷... 미국에 나와 살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각종 편의 시설을 잘 갖춘 나라인지 깨달았다. 거기에 물가도 대놓고 말해 뉴욕보다 싸다. 식비든, 생필품이든, 교통비든 무엇이든. 그런데 그런 것 다 상쇄하고 우리 얼굴을 삶에 지치고, 힘들고, 어둡게 만드는 게 우리 문화의 집단주의 특성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 속에서 개인은 몸은 편한데, 마음의 공간이 좁아 불편하다.
집단과 개인의 선호가 충돌할 때 개인을 선택하는 순간, 개개의 선택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이기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내 기호보다 다수의 평가가 중요한 곳. 내가 내 마음 편하자고 보내는 휴가도, 남에게 어떻게 평가 받은 지에 따라 개인의 만족도가 급격히 달라져야 하는 곳. 그리고 기꺼이 타인의 삶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오지랖 넘치는 분들이 많은 곳. 그 곳에서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기지개를 펼 공간은 충분한가? 창의적 교육, 스티브 잡스 형 인재... 아이들에게 이런 걸 요구하기 전에,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의견이 “튈” 때, 우리 사회는 그걸 과연 어떻게 수용하는 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오래 전부터 나는 개인주의가 좋다고 소심하게 옹알이를 해오던 나로서는, 늘 해오던 생각을 누군가 글을 훨씬 정연하고 재미있게 쓰는 사람이 한 방에 정리해 준 느낌이다.
곧 잠시 한국을 들어간다. 들어가서 이런 저런 “어떻게 살아야 해, 우리 나이 때는 이래야지, 다른 사람 다 그런데 너도 그래야 돼”의 릴레이를 듣고 올 내 가방에 이 책을 넣어 두어야겠다. 우리도 언젠가 개인의 의사를 집단의 의사보다 존중하고 아껴주게 될까? 규격화된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한 명 한 명의 스스로 삶을 꾸려갈 권리를 인정하게 될까?
침대에 굴러다니고 있는 이 책을 보더니 어머니께서 한말씀 하셨다. '이런 책'좀 그만 보라고-. '이런 책'이라는 표현에서 비치는 다소간의 못마땅함과 우려야말로 이전세대의 집단주의자들이 현대의 개인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아닐까. 하하.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일지 몰라도, 나는 어쩔 수 없는 개인주의자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사회의 거대한 흐름 아닐까 싶다. 난 작가가 책에서 그 자신을 표현했던 것과 같이, 회식자리에서 술을 안 먹는 것보다 주목받는게 더 싫어 억지로 먹는, 그런 소극적 개인주의자다.
소극적 개인주의자의 입장에서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은 정말 구절구절 밑줄을 치고 싶을 만큼 공감가는 내용 투성이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재밌고 웃길 수가 있나. 오늘도 직장에서 느꼈지만 나는 사람이 싫다. 아니 좋으면서도 싫다. 아니 싫으면서도 좋은 건가?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기에 같은 인간의 온기는 어느정도 필요로 하면서도 어느 순간 타인이 내 공간에 한 발 들여놓으면 흠칫 놀라서 두 발 물러서는 그런 인간이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크면서 그렇게 변했다. 사람 대하는게 피곤하고, 기빨리고. 남들이야 어쩌건말건 그냥 나 혼자 내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그런 인간으로 컸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주의자의 일원으로서 변명을 하나 해보자면, 그래도 싹퉁머리 없고 지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되진 않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책의 마무리 부분이 참 와닿는다.
Anyone can be cynical Dare to be an optimist
실제로 하는 일은 없으면서 불평만 하고, 소위 평가질만 하는 사람을 볼테면 항상 들던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해결책을 제시해봐. 그래서 네 주장은 뭔데? 뭘 하자는 건데? 그런 인간들의 공통점은 해결책 없이 그저 불평불만만 구구절절 뻐기면서(이부분이 중요하다. 자신이 불평할 줄 아는 영장류라는 데에서 벅찬 우월감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어떤 것에 대해 평가하고 깎아내리는 건 쉽지만 그것을 쌓아올리는 것은 어렵다. 이런 면에서 문유석 작가의 표현이 넘 웃기고 통쾌하다.
(중략)...노력이라도 해보려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그것도 하지 않는 비루한 자신을 위안한다. 어짜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다 쇼일 뿐이라며
책과는 상관없는 내용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약간 다르다. 사람은 혼자 있을때 내면으로 침잠하고 사유한다. 그러나 여러명이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각성상태에 접어들어 생각이 급히 짧아지고 어떠한 동물적 단순함에 생각이 매몰되는 것 같다. 집단주의에 돌아버려서 뭐만 하면 단체행동을 하려는 직장내 인간들(특히 40 50 대 아저씨들..)을 보고있자면 '멋진신세계' 속 인간상이 떠오르곤 한다. 소설속에서는 인간들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그들이 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사유하지 못하도록 항상 집단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혼자 있으면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벌어진 양 취급하고 항상 집단에 속해있도록 강제한다. 마치 현대 사회의 모습같다. 우리는 직접 육체적으로 집단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손안의 핸드폰 덕분에, sns라는 것 덕분에 거의 매 순간 하루종일 집단과 동화상태에 있다. 아니 오히려 sns 때문에 구시대적 집단주의로부터 탈피한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더 편향적이고 흑백논리가 난무하는 온라인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좀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 구시대적이든 온라인이든 집단주의와는 이별을 고할 때도 된 것이다.
지금의 내가 읽어서 더 좋았던 책. 자신이 개인주의라고 외치는 친구를 이해해보기 위하여 읽었지만 오히려 나의 가치관을 확인시켜 준 책이어서 고마웠다. 더욱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고 나의 작은 세계와 더 큰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해주려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 되고싶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 있지는 못하기에 서로 일깨워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성급한 냉소는 어리석다."
"어느 시대에나 타자의 고통에 대해 가장 예민한 이들, 가장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길거리에서 타살당할 염려 없이 일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