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 이 두 가지 화두는 늘 인생의 고민이다. 특히나 20, 30대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일하며 ‘잘’ 살아가는 여성 롤모델을 찾기 힘든 요즘, 임경선의 생각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2015년에 나온 베스트셀러 《태도에 관하여》이후 2016년 가을과 겨울을 지나 2017년 첫 달, 『자유로울 것』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 임경선의 사랑에 대한, 그리고 글 쓰며 먹고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은 임경선 작가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간 얼마나 억눌려왔는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여자로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다는 것.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 두렵더라도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한 개인이 사회와 자신의 환경을 돌아보고 ‘나’를 깨달아가는 책이자, 한 사람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몸소 알려주는 책이다.
Goodreads.com에 처음 임경선 작가의 책을 올릴 때 작가의 트위터를 통해 영문으로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직접 물은 후 책을 올렸었다. 그 후로 내가 읽은 책은 직접 정보를 올려왔는데 이번에 읽은 『자유로울 것』을 올리려했더니 다른 분이 이미 작가의 다른 최근작들과 함께 올려놓은 것을 알았다. 임경선 작가의 작품들이 점점 더 많이 읽히고 있는 반증일테니 오랫동안 작품을 읽어온 독자로서 기쁜 일이다.
2000년초 신문에 연재된 칼럼부터 10년 반을 지난 지금까지 내가 임경선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아끼고 믿는 대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유를 통해 굳어진 심지로 조곤조곤 이야기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니면 말고라는 기조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허탈함이나 맥빠짐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가 애정하는 영단어 중 하나인 fuzzy와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징하고 달뜨고 색깔 강한 목소리는 주의를 끌기는 쉽다. 하지만 베이지나 회색 같은 임경선 작가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오히려 더 크고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싶다.
pp. 16-17 얼마 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마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매년 정기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릴 때는 건강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가, 겸진 결과가 막상 괜찮으면 행복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고 이내 다른 새로운 조건들을 필사적으로 충족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이런 것들로 행복감이 일시적으로 충족되긴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산다거나,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하지만 그렇게 채워지는 행복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유효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같은 밀도의 행복을 다시 한 번 느끼려면 다음에는 더 좋고 비싼 물건을 사거나,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야만 한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른 성질을 지녔다. 특정 조건들을 갖추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의 문제이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흔히 듣는 겸손한 말은 맞지 않다.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둘을 혼동하거나 섞지 말고, 갈라놓은 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하면 된다.
p. 21 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좋은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고 그로 인한 자신의 선한 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깊은 곳에서 연결해준다. '아, 나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구나.' 상태로부터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드는 안도감과 충족감. 그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가진다.
p. 24 난 원래 이렇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는 솔직함은 궁극의 자기 합리화이자 정신승리 혹은 변명이 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머리가 굳어서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러한 솔직함은 생각이 유연하지 못한 자기 고집에 불과하다. 자연스럽게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나'는 과연 선의를 가진, 하루하루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좋은 사람일까? 혹여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냉혹한 질문을 던져본다. 있는 그대로의 나, 라고 하는 것은 실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안 되겠다며 노력하는 나',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나'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p. 121 과거에 아무리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내개 현재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관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다져가는 성의를 보여주는 사람만이 시간이 흘러 현재의 관계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러니 과거에 친분을 맺은 기간이 아무리 길었어도 지금 점차 멀어져가는 사람들에 대해 무리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끼고 좋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라고는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정도다. 번지수 틀린 곳에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까지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p. 130 어쩌면 그 모든 과거의 인연은,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p. 208 [...]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어쩌면 길거리에 서 있는 전봇대의 팔자를 떠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무심결에 전봇대를 툭 치고 지나간다. 간혹 지나가던 개들은 전봇대에 한 발 들고 오줌을 싸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버린다. 하지만 전봇대는 가만히 서서 그것들을 모두 감당해야만 한다. 오로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p. 240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 듦을 예민하게 의식하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 조바심은 지극히 이해가 갈 만하다. 마흔 살은 보다 성숙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느냐, 혹은 평범하게 늙어가느냐의 갈림길이긴 하니까. 한 뼘 더 저 멀리 도약하느냐 혹은 지금 서 있는 그곳에 남느냐로 갈리는데 여기서 남는다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자연도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머무는 게 아니라, 퇴보한다. 여러 가지 것들과 싸우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p. 244 결혼에 대해서는 '절대 안 한다'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도 아닌, 보다 자연스러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결혼은 이렇다, 라고 결론 내리고 그래서 안 하겠다는 결심은 조금 성급해 보인다. 타인의 결혼을 온전히 내 결혼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할 상대가 중요한 것이다.
pp. 254-255 운은 '우주의 기운'처럼 막연하게 느껴져도 나타날 때는 실질적으로 그 형태를 드러낸다. 예로,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나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기회가 주어지거나 하는 것들이다. 운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독립적인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행운이 내게 찾아와도 그걸 잡을 힘이 없거나, 그것이 행운의 기회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재능과 노력이 서로를 최대치로 상승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에게 강력한 기운이 생기며, 사람들은 그 긍정적인 기운에 저절로 이끌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p. 259 트레이너는 내가 막판에 힘들어할 때마다 늘 이렇게 일러주었다. 괴롭다고 신음하며 겨우 해내는 마지막 대여섯 번의 운동 동작이 실질적으로 내 몸을 바꾼다고. 편하게 하던 대로만 운동하면 체력이나 근력의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그 이상은 늘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면 인생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p. 281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