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책을 펼치는 것은 작가에 대한 기대와 믿음에서다. 시집, 산문집, 여행기, 번역서로 변함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류시화 시인의 신작 에세이. 이번 책의 주제는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다. 표제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외에 「비를 맞는 바보」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라」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 「인생 만트라」 「자신을 태우지 않고 빛나는 별은 없다」 등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진실한 고백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어차피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마법을 일으키는 비결」도 실었다. 만약 우리가 삶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걸 알게 될까?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라고. 인생의 굴곡마저 웃음과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통찰이 엿보인다. 흔히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지만, 어떤 붓은 쇠처럼 깊게 새기고 불처럼 마음의 불순물을 태워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사색하게 한다.
한 권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언제나 여행을 떠난다는 류시화 작가. 나는 류시화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가 했던 여행의 시간들을 빚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경험 속에 눅진히 녹아들어 표출되는 이야기들은 놀라우리만큼 평범한 일들마저도 새삼 되돌아보게하는 무언가가 있다. 숨결이 살아 있는 글 속에 일상과 종교가 자연스럽게 공존해 있기 때문일까. 그의 글은 늘 설득력 있게 다가와 나를 그의 이야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어느덧 나는 인도의 어느 길모퉁이 찻집에서 짜이를 마시며 현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공기가 텁텁한 만석의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퍼붓는 폭우 속에 서서 그 순간을 온 몸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이 말 한 마디가 무심하게 다가와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번쩍 들어올려 줄 때가 있다. 내 작은 머리를 고집스럽게 비집고 나와 내 삶을 방해하곤하는 나의 계획들은 좀 놓아버릴 줄도 알아야겠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느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