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장편소설. 이 소설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1920년대로 추정되는 식민지 조선, 청계천 개울물에서 단발을 한 세 여자가 물놀이를 하는 사진. 1990년 냉전시대의 마침표를 찍으며 한소수교가 이루어진 그 다음 해, 박헌영과 주세죽의 딸이며 소련의 모이세예프 무용학교 교수인 비비안나 박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그가 들고 온 여러 장의 사진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가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한 것은 사진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허정숙을 발견한 힘이 컸다. 허정숙에 흥미를 가지고 들여다보다가 '신여성이자 독립운동가'라는 새로운 인물 군상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 각각의 무게감은 다를지언정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지이자 파트너였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 여성들은 왜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세 명의 여성 혁명가, 그들의 존재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어쩜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지....? 정말 역사 소설을 쓰려면 책을 100권 정도는 읽어야 하나보다. 실제 인물들을 다룬 소설이라 서사의 뚜렷한 목적성이 없고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새삼 한국이 민주주의에 입각한 선거를 하고 정치를 하고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말 중에 "마르크스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그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가 인상 깊었다. 이 소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주인공이 자서전을 쓰지 못했고 아무도 전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이 소설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