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환자다.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재앙이 오겠습니까.
有疾心 唯有害
-기원전 1300~1192년, 갑골문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책 <피로사회>의 첫 선언이다. 그리고 역사는 주요 질병에 의해 변화한다.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질병인 페스트는 역사상 어떤 자연재해나 인재, 역병들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고, 14세기 유럽의 붕괴를 가져왔다. 동시에 페스트는 우럽의 역사를 바꿨다. 그럼 오늘날의 페스트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의 페스트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신경성 질환이다. 즉, 정신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신병이 현대에 들어서서야 문제로 드러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은나라-무정 시대의 갑골문은 3000년 전에 대왕이 가진 마음의 병을 기록으로 남겻다. 이렇듯 지나온 역사를 돌아다보면, 많은 군주가 정신병을 앓았다. 그리고 역사가 바뀌었다.
로마 제국의 젊은 황제, 칼리굴라는 그들 중 하나이다. 로마 제국의 역사학자이자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는 군왕이 떠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끔찍했던 광경에 대해 언급해보겠다, 라며 위대했던 칼리굴라가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한 바 있다. 그의 변화는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칼리굴라가 걸린 중병은 뇌염으로 추정된다. 뇌염은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하는 병으로, 기존에 안고 있던 질병이나 반사회적 성향 등을 강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칼리굴라는 즉위한 지 4년도 되지 않아 어느 극장에서 수차례에 걸쳐 칼에 찔린 뒤 사망한다. 그가 어느 날 검투장에서 관중들을 무차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래지 않았다면. 그가 정신이상증을 앓지 않았다면 군주에 자리에 더 오래 있지 않았을까. 왕좌에 앉아 민심을 얻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대중들이 원하는 먹을거리와 유흥거리를 제공했던 칼리굴라의 젊을 적 모습이 떠오른다.
조선시대, 정신병에 걸린 왕족하면 사도세자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정축년 무인년 이후 (사도세자의)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이 발작할 때에는 (사도세자가) 궁비와 환시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영조 실록>의 기록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 한중록을 분석하여 연구한 결과, 사도세자는 즐거움과 우울, 분노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를 앓았을 거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훈육이 아들을 질식하게 했고, 결국 유전적 요인과 맞물려 우울증에서 조증, 정신병인 양극성 장애로 발전해 간 것이다. 사도세자는 1762년, 만 27세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죽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 왕조에서 가장 슬픈 죽음이엇고 조선의 역사에 무겁게 영향을 주었다.
아툴가완디의 책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정신병을 앓은 의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때 명성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였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일정과 우울증으로 심각한 의료과실을 저지른 의사의 이야기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수술을 대충대충하기 시작했고 환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런 그를 보다 못한 동료들은 그를 정신병에 걸린 의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우울증과 기타 여러가지 병명을 진단받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상태는 천천히 호전된다.
전문직의 자살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 자살 현황을 보면 직업적 자살자 비율은 종림어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마다 1%포인트 안팎의 작은 비율로 증감한 반면, 전문직 관리직 자살자는 최근 10년간 6배 증가했다. 원인으로는 업무의 부담감과 수면과 여가시간 부족 등 고강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 소위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나 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심한 경쟁에 몰리면서 그동안 누렸던 지위를 내려놔야 한다는 지위상실에 대한 불안감,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엇다. 하지만 그들도 먼저 사람이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툴 가완디의 책 속 정형외과 전문의처럼.
역사 속 왕도 마찬가지다. 치료받아야 했다. 로마의 황제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까. 알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주위가 두려웠을까. 아니면 그저 미치광이 폭군이었을 뿐이었나. 황제의 주변에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정말 없었을까?
정신의학의 역사는 일반적인 의학사와는 다른다. 치료제 개발, 질병의 극복, 백신 개발, 새롱누 치료법 탄생과 같은 영웅담으로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치료적 수용소 풍경에서 정신의학은 시작되어 20세기 말 정신과 개원의의 조용한 진료실에서 끝난다. 그 이전에 정신의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귀신들린 상태라고 여기고, 참혹한 마녀사냥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정신의학이 없었던 시절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다.
책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질병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여파와 역사의 물줄기를 좌지우지 해떤 정치가들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다룬다. 나는 후자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겪었던 질병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과 질병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놀라면서도 역사 속 인물을 더 알고 싶어졌다. 정신병에 걸린 권력자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만약 권력자들이 치료를 받았더라면, 정신질환에 걸린 것을 스스로가 알았더라면 하는 상상을 계속했다. 그리고 몇 가지 느낀 점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면 솔직하게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 누구나. 정신병을 겪을 수 있다는 것.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재열이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환자다.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