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혁명과 도시 형성은 문명을 발생시켰고, 기후적·지리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문화를 만들었다. 문화의 물리적 결정체인 건축은 기후와 환경이 다른 동양과 서양이 각자 다른 양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지역 간 문화의 교류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분야 간 융합과 시대 간 접목으로 문화가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현재 문화의 진화 단계는 어디쯤이며, 앞으로는 어떤 결합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까? 공간을 중심으로 문화의 기원, 교류, 진화에 대해 풀어낸 저자의 흥미로운 주장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읽는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다.
다 읽는데 정확히 이 주가 걸렸다. 그 동안 이 책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건축가의 관점으로 바라본 인류의 역사. 농업 혁명부터 시작해 현시대까지 건축 역사를 단순한 논리 구조를 통해 시원 시원하게 설명해 나간다.
처음엔 이 책에 대해 부정적 이었다. 논리 구조의 비약과 과장이 심해 보였으며, 어디서 본 듯한 논리나 근거 자료의 인용이 허술 하거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텍스트와 이미지 여러 곳에 편집상의 오류도 존재 했다. 이 책의 초반부 에는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라는 단어가 기원전 농업혁명 당시의 지구 기후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데 이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이 두 단어는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화석연료 사용의 폭발적 증가, 연소과정에서 온실기체의 배출, 지구 평균 온도 상승, 그리고 이로 인해 증폭된 기후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정의하고 설명하는데 쓰이는게 더 적합하다.)
그리고 지금은 이 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우선, 가족 그리고 북클럽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책이 가진 영향력을 깨달았다. 위에 언급한 '논리구조의 비약' 그리고 '허술한 검증 및 인용'은 어쩌면 비전공자에게 '흥미 유발' 그리고 '쉽고 빠르게 읽히는' 으로 대체 되는듯 싶었다. 과학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써 마음 한켠에 찝찝함은 여전히 남지만, 이또한 학계의 보수성과 현실문제를 외면하는 방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학술 커뮤니케이션을 이분법 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분야에 깊게 몰입하는 전문가, 소통과 연구에 둘다 힘쓰는 전문가, 소통에 특출 나면서도 한 분야에 이해도가 높은 커뮤니케이터, 그리고 대중과 친근한 커뮤니케이터 까지. 우리 사회에 모두 필요한 존재다.
그리고 최근 일어난 한국/미국 사회 문제들이 이런 결론에 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발전은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에 뿌리가 있다. 법과 정치, 과학과 기술, 금융과 기업, 자본가와 노동자, 미디어와 대중, 사법 및 행정 기관 등등.. 내 삶의 양식은 전적으로 타인에 의지한다. 아니, 의지 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벌어진 여러 사회 문제들, 그 깊은 내면에는 사회적 ‘불신’이 보인다. 지금 당장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왜/언제/어떻게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을까? 혹은 기존에 존재하던 불신의 불씨들에 기술발전이 부채질을 한 것 일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건강한 사회적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현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에선, 현대 사회에서 물리적 공간의 거리감은 교통수단의 발달을 통해 정복 됐으며 이제는 가상 공간의 확장이 일어나는 시대라는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몇년간 일어난 여러가지 정치 사회적 문제들에 이 관점을 대입하면 정말 다양한 생각 거리가 생긴다. 젊은 세대들의 문화 소비 형태. 기성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 기성 언론과 가짜 뉴스. 음모론의 확산과 정치 진영을 막론한 극단 주의자들 등 ... 지금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조금 더 철저한 레퍼런스 검토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리뷰가 선행 됐다면 단순히 우리 나라에서 흥행한 대중 서적을 넘어 전 세계 다양한 독자층에게 알려질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