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nto de la espada» es la recreación literaria de la figura histórica de I Sunsin, legendario almirante de la armada coreana, honrado póstumamente como salvador de Corea por su victoria sobre el invasor japonés en 1598. Escrita desde la perspectiva de su protagonista, la novela se centra en los dos últimos años de su vida. Al comienzo del enfrentamiento naval con Japón en 1597, el almirante I, víctima de una intriga política, espera su ejecución en Seúl. Pero cuando la armada coreana se ve al borde de la aniquilación, I vuelve a ser llamado al servicio de su país. Gracias a un fruto del ingenio, el «barco tortuga» blindado, y a su habilidad estratégica el almirante consigue destruir, batalla tras batalla, la poderosa armada enemiga. La narración alterna las descripciones basadas en el Diario de guerra del propio I Sunsin con una aproximación a su lado humano y reflexivo, que traspasa la aureola mítica asociada a su figura. Sobre el telón de fondo de la guerra, se asiste a la tragedia humana de I y a su meditación sobre la vida y la muerte.
소설가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문학기행1, 2'(공저)'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Der Klappentext klingt besser als es ist. Sehr redundant und langweilig geschrieben. Die Charaktere sind nicht wirklich interessant. Eigentlich ja ein spannender Stoff - aber sehr öde erzählt. Ich kann nicht verstehen, warum dieses Buch so erfolgreich ist.
Und ja - das Buch ist sehr kurz - aber weil es so sterbenslangweilig ist hab ichs nie lange ausgehalten darin zu lesen. Und das will was heißen! Denn eigentlich mag ich langweilige Bücher.
이미 끝은 알지만 내 마음은 요동쳤다. “살아라. 살아라” 하기도 하고 “떠나라. 떠나라” 하며 읽었다. 삶에 대한 허무감과 무력함이 묻어나온다. 이순신은 삶과 죽음, 선조와 적, 분노와 연민, 그리움과 무정함의 사이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장편소설엔 김훈의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이, 영웅 이순신이 아닌, 사람 이순신으로 드러나있다.
[안개 속의 살구꽃]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휴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다시 세상 속으로]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칼과 달과 몸]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허깨비] (우의정)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부지런했다.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캐] 이미 멸망을 체함한 자들의 깊은 무기력이 고기 건더기를 넘기는 그들의 목울대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내 안의 죽음]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젖냄새] 작고 따스한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비린 젖냄새 속에서 내가 느낀 슬픔은 아마도 그 닮음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이다.
[무거운 몸]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옥수수숲의 바람과 시간]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그 개별성에 나는 참담했다.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서늘한 중심] 철수하는 적들을 바다에서 잡을 수 없다면,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그 견딜 수 없는 적막보다는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 싶었다. ..내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낼 불아궁이에 던졌다.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적탄에 쓰려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다른 책, 정확히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개의 기록'인지 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필체에 매료되었고 마치 개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의 감정을 느껴서 좋아했다. 비록 개에 대한 사랑은 없지만...
그래서 호감을 갖게 된 작가의 책이라 또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라 이 책을 읽었는데 작품의 묵중한 주제와는 달리 현란한 묘사가 거슬려서 읽기가 힘이 들었다. 왜 이 책에 어울린다고 볼 수 없는 수사가 그토록 필요했을까? 내내 그 생각에 시달리느라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어떤 생각에서 그리 한 것일까? 묘사를 보다가 작품의 줄거리를 놓치고 말았다고 할까? 이 작품으로 인해 작가에 대한실망이 컸다.
묘사를 무조건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한국에 가서 그토록 읽고 싶어하던 박경리의 '토지'를 1권에서 7권까지 읽었다. 미국에는 책을 구해보기가 힘드니 매년 한국에 갈 때마다 빌려 읽으리라. 그런데 그 책에 나오는 묘사에는 번번히 혀를 내두르며 감탄에 감탄을 했다. 한국책을 나이들어, 특히 미국으로 이민와서는 많이 읽지도 않고 읽고 싶어하지도 않지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시골지방에 맞는 문화에 대한 소개를 묘사할 때는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을 많이 한 바이다.
그런데 김훈의 묘사는 어쩐지 내용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도는 느낌에다 글재주를 자랑하는 묘사같이 보인 것은 내가 문학에 대한 조예가 아직 부족한 탓인가?
일단은 말이 어렵다. 모르는 단어들도 수두룩. 하나씩 찾아보기엔 인내력 부족. 그에게 주워진 상황들이 너무나 답답하다. 약한소국은 임금도 힘이 없고, 조정은 부패 했고,, 백성들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간다. 임금도, 중신도, 이순신도, 그리고 백성들도 울고있다. 이순신은 말한다. “내마음속에 두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고있다. 죽여서 않된다와 살려서도 않된다가. 두 울음이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있다.”
잔인하다. 죽이고 죽고, 생명의 존엄성따위는 없다. 삶과 죽음사이의 불분명한 경계를 끝임없이 오가면서, 이순신은 무력과 굴욕속에서 고독하다.
이 책은 칼이 뿜어내는 한의 소리다. 피에 젖은 삶, 다가오는 적의공세, 쉼없는 공포, 그리고 내포된 죽음. 그의 칼은 눈물로 노래한다. “한바다가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못드는 밤, 새벽 달창에들어 칼을 비추네.”
저자는 우리의 후각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자극 시킨다. 여진의 몸냄새와 면의 젖냄새를 여러번 언급하면서, 이순신이 장군이기전, 한남자임에, 한아비임을 계속 상기시켜준다.
동인 문학 수상작인 이책은 역사와 개인사이에서 숭엄한 비극을 노래한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이다.” 라는 묘비명을 미리 정해놓은 이순신 장군님, 당신의 서러움, 용기, 고독, 그리고 경건함을 묵상합니다.
Ufff, por fin terminado. Este libro me ha generado dos impresiones diversas. Por un lado, la historia es terriblemente cruenta (en algún momento la compararé con un libro southparkiano), pero está llena de escenas escabrosas y el "héroe" protagonista es un decapitador serial. Precioso. Lo que verdaderamente rescato es la traducción, mejor dicho, ¡la revisión! Es una obra maestra, realmente, de lo mejorcito que he leído en cuanto a traducciones.